겨울 저녁, 식탁 한쪽에 귤을 한 바구니 올려두면 손이 자꾸 그쪽으로 향합니다. TV를 보며 하나를 까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또 하나를 집습니다. 그런데 과육을 따라 붙어 있는 하얀 실과 얇은 막은 꼭 손톱으로 떼어내게 되지요. 쌉싸래한 맛이 싫어서일 때도 있고, 혹시 껍질 찌꺼기나 농약 성분이 아닐까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귤의 하얀 부분은 정말 떼어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정상적인 귤에 붙어 있는 하얀 실과 막은 버려야 할 이물질이 아닙니다. 귤이 자라는 동안 물과 당이 오가는 데 관여한 식물의 조직입니다.
귤 속에 남은 작은 길
귤 껍질은 크게 바깥쪽의 색 있는 부분과 안쪽의 흰 부분으로 나뉩니다. 바깥의 주황색 부분은 ‘플라베도’, 안쪽의 하얗고 스펀지처럼 보이는 부분은 ‘알베도’라고 합니다.
우리가 귤을 깔 때 과육 표면에 남는 하얀 것은 이 알베도 조각일 수도 있고, 가늘게 뻗은 관다발일 수도 있습니다. 귤 조각을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은 조각막이라고 부릅니다. 눈에는 모두 비슷한 흰 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조직이 섞여 있는 셈입니다.
관다발은 식물 안에서 물과 무기질, 잎에서 만들어진 당류가 이동하는 통로입니다. 흔히 ‘귤 과육에 영양을 직접 꽂아주는 혈관’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감귤에서는 관다발이 주로 알베도 부근까지 이어집니다. 그곳에서 물질이 알베도 세포와 조각 표면의 조직을 거쳐 과육 속 즙주머니로 이동합니다. 그러니 하얀 실은 과육 속에 액체를 직접 흘려보내는 관이라기보다, 귤이 자라는 동안 물질이 이동하는 길과 그 주변 조직의 일부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껍질을 벗긴 뒤에도 그 흔적이 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귤이 과육을 보호하고, 자라게 하는 과정에서 생긴 구조가 우리 눈앞에 드러난 것이니까요.

하얀 부분이 쌉싸래한 까닭
하얀 실을 먹었을 때 유난히 쓴맛이나 떫은맛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쓴 성분이 있으니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요.
알베도와 조각막에는 플라보노이드라는 식물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감귤류에서 잘 알려진 성분 가운데 하나가 헤스페리딘입니다. 연구에서는 헤스페리딘이 귤의 알베도에 비교적 많이 존재하는 경향이 확인됐고, 관다발 주변에서 헤스페리딘 결정이 관찰된 사례도 보고됐습니다.
다만 하얀 실의 쓴맛을 헤스페리딘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헤스페리딘은 감귤류에 흔한 성분이지만, 강한 쓴맛을 내는지 여부는 다른 플라보노이드와의 조합, 성분의 농도, 귤의 품종과 익은 정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감귤류의 쓴맛에는 리모노이드 계열 성분 등 다른 물질도 관여할 수 있습니다.
즉, “하얀 실은 헤스페리딘 때문에 무조건 쓰다”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여러 식물 성분이 모여 알베도와 막에서 쌉싸래한 맛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귤의 단맛이 강할수록 이 맛이 덜 느껴질 수도 있고, 품종에 따라 차이도 생깁니다.

먹어도 되는 정상적인 조직
알베도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폐기 부위로만 취급되지 않습니다. 안에는 헤미셀룰로스, 펙틴, 셀룰로스 같은 식이섬유가 들어 있으며, 감귤 껍질과 알베도에서 얻은 섬유질은 식품 원료나 가공식품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마멀레이드나 펙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귤을 먹다가 과육에 붙은 하얀 실을 조금 함께 먹는 것은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식감이 거슬리지 않는다면 굳이 하나하나 떼어낼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하얀 부분을 일부러 많이 먹어야 한다거나, 먹으면 혈관 건강과 면역력이 크게 좋아진다고 말할 근거까지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먹어도 된다’는 말과 ‘특별히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은 다릅니다. 하얀 실은 귤의 정상적인 조직이지만, 건강식품처럼 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곰팡이와는 어떻게 다를까
귤을 깠을 때 과육 표면에 얇게 붙은 흰 실이나 조각을 따라 이어진 막은 대체로 알베도와 관다발, 조각막에 해당합니다. 냄새가 이상하지 않고 과육이 단단하다면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반면 솜털처럼 번지는 곰팡이가 보이거나, 물러짐과 이상한 냄새가 함께 난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런 귤은 하얀 실을 떼어내고 먹을 문제가 아니라 변질 여부를 살펴야 합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귤을 깐 뒤 남은 안쪽 조직입니다. 귤 껍질 전체를 생으로 많이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깥 껍질을 음식에 이용할 때는 세척과 제품 표시, 재배·유통 과정의 잔류물 가능성을 따로 고려해야 합니다.
귤 한 개를 까면 우리는 주황색 과육만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는 열매를 키운 여러 길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하얀 실은 보기에는 성가신 찌꺼기 같아도, 사실은 귤이 자라며 물과 당을 주고받던 조직의 흔적입니다.
다음번에는 모두 떼어내기보다 몇 가닥쯤 그대로 두고 먹어봐도 좋겠습니다. 쌉싸래한 맛이 귤의 단맛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느껴보는 것도, 겨울 과일을 새롭게 즐기는 작은 방법일 테니까요.
-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6775482/
- https://repository.kulib.kyoto-u.ac.jp/bitstream/2433/200179/1/pca.2541.pdf
-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abs/10.1111/tpj.12030
- https://www.fda.gov/files/food/published/GRAS-Notice-000599—Citrus-fiber.pdf
- https://www.ars.usda.gov/ARSUserFiles/80400525/Data/Flav/Flav02-1.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