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오래된 문자 한 통에서 손가락이 멈춥니다.
“밥은 먹었어?” 짧은 문장 끝에 붙은 이모티콘 하나가 그 사람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만약 그 말투로 AI가 “오늘은 좀 괜찮아?”라고 먼저 말을 걸어온다면 어떨까요.
반가울까요, 아니면 다시 이별하는 기분이 들까요.
아래 장면은 실제 사례가 아닌 가상의 상황입니다. 다만 고인의 문자와 이메일, 게시물, 음성 등을 바탕으로 말투와 반응을 재현하는 기술은 이미 여러 형태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때 AI가 되살리는 것은 고인의 의식이나 기억이 아닙니다. 남겨진 기록에서 언어 습관을 찾아, 그럴듯한 새로운 답변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긴 것은 ‘디지털 유산’이 된다
누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메일, 메신저 대화, 사진, SNS 게시물, 음성 녹음은 남습니다. 이런 자료를 통틀어 디지털 유산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 기록이 단순히 고인의 것만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메시지에는 가족과 친구의 말도 함께 들어 있고, 사진에는 다른 사람의 얼굴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고인의 계정에 접근한다고 해서 그 안의 모든 내용을 자유롭게 공개하거나 AI에 넣어도 된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입니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유산을 하나의 법률로 명확하게 정리한 체계는 충분히 마련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메일이나 SNS 계정이 상속 가능한 재산인지, 서비스 약관에 따른 이용 권리인지도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AI는 ‘그 사람의 말투’를 어떻게 찾을까
추모형 AI를 만들려면 먼저 자료를 모읍니다. 문자와 이메일, 게시물, 녹음, 영상, 가족의 설명 등이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후 반복해서 쓰는 단어, 문장 길이, 존댓말 여부, 자주 붙이는 표현 같은 특징을 정리합니다.
그다음 방식은 서비스마다 다릅니다.
고인의 기록 가운데 질문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 AI가 참고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검색증강생성, 즉 필요한 자료를 검색해 답변에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고인의 말투를 설명한 지시문과 실제 문장 예시를 함께 제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다른 방식은 고인이 생전에 직접 남긴 답변을 질문별로 분류해 두었다가, 가족의 질문에 맞는 녹음을 찾아 재생하는 것입니다. 이 방식은 고인의 음성으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챗봇과는 다릅니다.

자연스러운 답변이 곧 진짜 기억은 아니다
생성형 AI는 앞선 문맥에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단어를 차례로 골라 답변을 만듭니다. 그래서 말투가 익숙하고 문장이 자연스러워도, 그 내용이 실제 고인의 기억이나 생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기록에 없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오답이 생깁니다. 고인이 한 적 없는 말을 했다고 답하거나, 실제로는 알 수 없는 사건을 아는 것처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보낸 다정한 문자만 많이 남아 있다면 AI는 그 사람을 늘 따뜻하고 다정한 인물처럼 재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에는 말하지 않은 시간, 달라진 생각, 가족에게 보이지 않았던 모습도 있습니다. AI가 보는 인격은 그 사람 전체가 아니라 남아 있는 기록의 일부에 가깝습니다.
그럴듯한 오답이 더 위험한 이유
사랑하는 사람의 말투를 닮았다는 사실은 답변에 특별한 힘을 줍니다. 평소라면 의심했을 문장도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실제로 고인의 약혼녀와 대화하기 위해 AI 챗봇을 사용한 사례가 알려진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AI가 실제 인물을 되살린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입력한 인물 설명과 대화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장을 생성한 것으로 설명됩니다.
따라서 “고인의 기억을 저장해 그대로 말하게 한다”는 표현은 조심해야 합니다. 기존 녹음을 찾아 들려주는 서비스와, 기록을 바탕으로 새 문장을 만드는 서비스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유가족에게는 위로이자 또 다른 이별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AI 추모 서비스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화가 끝난 뒤 상실감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 애도에 도움이 되는지, 장기적으로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일반화하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위로가 된다”거나 “애도를 방해한다”고 단정할 근거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특히 AI가 먼저 말을 걸거나, 고인이 생전에 하지 않았던 표현으로 감정을 드러낼 때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위로를 받는 순간에도 사용자는 그것이 고인의 응답이 아니라 AI가 만든 결과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동의는 가족의 허락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 음성, 영상, 문자 기록을 사후 AI 재현에 사용해도 된다고 밝혔는지입니다.
그런 의사가 없다면 유가족의 판단이 중요해집니다. 하지만 가족 한 사람의 동의만으로 충분하다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공동상속인 사이의 합의, 메시지에 등장하는 제3자의 사생활, 저작권, 초상과 음성의 이용 문제 등이 함께 남기 때문입니다.
“사망자의 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니니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이해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의 적용 여부와 별개로, 사자의 명예와 유족의 추모 감정,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사생활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서비스 화면에 반드시 보여야 할 것
이런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안내가 눈에 잘 띄게 제공돼야 합니다.
- 지금 보고 듣는 답변이 AI가 생성한 것인지
- 고인의 실제 발언이나 녹음인지
-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 이용 가능한 사람이 가족으로 제한되는지
- 기록과 음성의 보관 기간은 얼마인지
- 삭제 요청과 서비스 종료 때 데이터는 어떻게 처리되는지
- 공개나 상업적 이용에 별도 동의가 필요한지
특히 생성된 답변에는 ‘실제 발언’과 ‘AI 생성 문장’을 구분하는 표시가 필요합니다. 고인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닮을수록, 이용자가 실제 인물과 대화한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더 분명하게 알려야 합니다.
기억을 남기는 방법은 AI만이 아니다
고인의 말을 AI로 재현하는 방식이 부담스럽다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생전에 직접 남긴 음성 녹음과 영상을 원문 그대로 보관하거나, 가족이 함께 사진과 편지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질문별로 답해 둔 인터뷰 파일을 만들어 두면, 나중에 필요한 답변만 직접 찾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 방식은 빈칸을 AI가 상상해 채우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남겨진 말과, 나중에 새롭게 만들어진 말을 구분하기도 쉽습니다. 기억을 오래 보관하는 목적이라면 ‘더 실감 나는 재현’보다 ‘원본을 안전하게 남기는 일’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사용 전, 이것만은 확인하세요
추모형 AI 서비스를 고민한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 본 뒤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 고인은 생전에 AI 재현에 동의했나요?
- 실제 기록 재생과 AI 생성 답변을 구분할 수 있나요?
- 다른 가족과 메시지 속 제3자의 동의 문제는 확인했나요?
- 음성·영상·대화 기록의 공개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 틀린 답변을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나요?
- 서비스가 종료되면 자료를 돌려받거나 완전히 삭제할 수 있나요?
- 사용 후 마음이 더 힘들어질 때 중단할 방법이 있나요?
AI가 고인의 말투를 닮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닮은 말투가 곧 고인의 의식은 아닙니다. 추모형 AI는 기억을 저장하는 보관함이라기보다,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인터페이스에 가깝습니다.
결국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이 남긴 말’과 ‘그 사람처럼 만들어진 말’입니다. 그 경계를 분명히 알 때, 기술은 추억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추억을 돌아보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 한국지능정보사회연구원·KISDI, 「디지털 유산 법제 정비에 관한 연구」
https://kisdi.re.kr/report/fileView.do?arrMasterId=3934580&id=1930236&key=m2101113024770 -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디지털 유산 법제 정비에 관한 연구」
https://www.kicj.re.kr/boardDownload.es?bid=0001&list_no=15956&seq=1 - San Francisco Chronicle, “He couldn’t get over his fiancee’s death. So he brought her back as an A.I. chatbot”
https://www.sfchronicle.com/projects/2021/jessica-simulation-artificial-intelligence/ - HereAfter AI, “What Is HereAfter AI?”
https://www.afterlife.ai/what-is-hereafter-ai - King’s College London, “Can you really talk to the dead using AI?”
https://www.kcl.ac.uk/news/comment-can-you-really-talk-to-the-dead-using-ai-we-tried-out